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7> 파주의 대표 화가 김종도- 독일로 간 김복동할머니와 김종도 화가
수정 : 2019-07-27 05:56:04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87> 파주의 대표 화가 김종도
독일로 간 김복동할머니와 김종도 화가
" 그림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표지사진 : 김종도 화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사실 고발한 고 김복동 할머니를 그린 그림
‘2019 기억의 보따리전 in 도르트문트’
‘보따리’전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알리고, 여성인권 회복을 꿈꾸는 예술가들이 모여 진행하는 전시이다. 2015년 한국여성인권재단의 후원으로 세계2차대전의 상처가 남은 유럽 각지를 순회하며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전쟁 없는 평화를 위한 목소리를 전했으며, ‘2018 보따리 인 베를린’을 개최하기도 했다.
올해는 한일 작가들이 함께 모여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삶을 그린 이번 <기억의 보따리>전은 독일 교회의 날 행사에 초대되어, 독일 도르트문트 LWL 산업박물관 제체 쫄러른에서 진행되었다. 한국과 일본 작가 16명의 작품 60여점과 소녀상이 6월 20일부터 6월 23일까지 전시되었다.
독일 교회의 날(Kirchentag)은 1949년부터 시작되어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다양한 연령대와 종교배경을 가진 20만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2,500여 가지가 넘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한다.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재고찰, 화해의 정신을 추구하는 축제이다. 2019년 교회의 날은 “기억, 만남, 숙고”를 주제로, 산업시대의 역사와 강제노동의 만행을 함께 기억하며, 노동계급, 여성노동자들의 인권을 다루는 전시를 꾸준히 가져 온 제체 쫄러른에서 열린 것이다.
▲2019년 도르트문트 제37차 교회의 날 평화증진을 위한 예술 프로젝트 '기억의 보따리 전'
가치같이 펀딩을 통해 기금 마련
“예술을 통해 일본군성노예제와 무력분쟁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리는 <기억의 보따리>전, 함께 해주세요!” 정의기억연대가 가치같이에서 ‘2019 보따리전’ 펀딩을 호소하는 글이다.
‘2019 보따리전’은 <창작팩토리 오감>과 <정의기억연대>가 공동 주관하는 것으로, 가치같이 펀딩으로 기금을 모으고, 작가들이 자부담도 하고, 독일교포들의 후원 등으로 16명의 작가들이 함께 할 수 있었다.
고경일, 겐지 마세, 김서경, 김운성, 김종도, 도노히라 유코, 마사루 하시모토, 미시마 아유미, 박비나, 박영균, 백무현, 송유미, 이구영, 이하, 정유진, 조아진씨가 함께한 작가이다.
▲ 독일 교회의날 합동성찬식 행사장에서
그 후, 독일 뒤셀도르프 일본총영사의 항의
전시회 이후의 일이다. 독일 뒤셀도르프 일본총영사 마사토 이소씨가 6월 25일에 박물관 관장 뢰브씨를 방문하고 교회의 날 행사의 일부로 쫄러른 탄광 박물관에 소녀상이 전시된 것에 대해 항의하였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보따리전에 작가를 초대한 노만 목사가 뢰브박물관장에게서 들었다는 것이다.
이소 총영사는 일본 정부는 20여년 전부터 사과를 위해 노력해왔지만 항상 한국 사회의 특정 그룹에 의해 그 사과가 거부당했다고 강조했다 한다. “2015년 합의에 따라 일본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으며 피해 여성들 보상을 위한 재단금 출연을 하여, 그 기금이 생존해 있는 여성들에게 돌아갔다. 일본과 한국간 관계악화의 주요 책임은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일부 작가들이 포함된 한국의 ‘극단주의자들’에게 있다. 한국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 때 독립 국가가 아니었으며, 일본의 식민지 국가였기 때문에 일본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고 더불어 성노예화에도 스스로 참여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며 이소 총영사는 일본은 이 사안에 대해 종결을 짓고 싶어한다는 점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 한다.
노만목사로부터 이런 내용의 통화내용을 전해 들은 김종도 화가는 분노했다.
지금 강제징용노동자 판결을 시비로 수출제재 조치를 취하며 무역전쟁을 벌이는 행태와 똑같다. 이소 총영사의 말이 지금 일본 아베정권의 논리이다.
▲서명하는 기독교인들
목련 꽃 든 김복동 할머니를 그리다.
지난 1월 28일 일제강점기 성노예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영면했다.
김복동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얘기를 듣고 몇 몇 화가들이 모여 준비를 했다. 김종도 화가는 할머니의 영정 초상화, 차량용 영정은 이구영, 장례식장 걸개그림은 박영균 작가가 준비하기로 했다. 김종도 화가는 할머니가 평생 고통을 받으셨지만 이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인권운동가로 거듭났다며, ‘우리에게 삶을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산 표본이라고 말했다. “멀리서나마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떠나는 길에 제 손길이 보태진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진심으로 할머니가 저 세상에서 봄날을 맞기 바래요.”
정읍에서 파주로
김종도 화가는 1959년 정읍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였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면서 파주출판도시가 생길 때 파주로 오게 되었다. 그는 어린이책 삽화를 무척 많이 그렸다. 『겨레를 빛낸 역사인물 100인』, 『장영실』, 『주시경』, 『노벨평화상과 김대중』, 『까치와 수수께끼놀이』, 『빌뱅이언덕 권정생 할아버지』, 『백범일지』, 『원경선』 등 수많은 책에 그림을 그렸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6인의 초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교과서에도 그림이 많이 실려서 대한민국 어린이라면 한 번 이상은 김종도 화가의 그림을 접했으리라. 『둥그렁뎅 둥그렁뎅』은 프랑스에도 수출된 그의 그림책이다. 2013년에는 『내색시는누구일까(보리)』를 내면서 동화작가로 나섰다. 글과 그림 모두 잘 쓰는 작가이자 화가인 예술인이다.
▲ 째헤 쫄러른 박물관 전시 후 마을에서
임옥상을 은사로
그의 대학 시절, 임옥상 화백이 은사였다. 스승은 박근혜 정부 시절 대표적인 민중화가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은 청와대 본관에 대형 촛불그림이 걸려있다.
“제가 삶에 대해 눈을 뜬 임옥상 교수로부터예요. 교수님이 ‘너희는 부모님의 얼굴을 그려본 적 있니?’라고 하는 거예요. 다들 어리둥절하는데, ‘부모님이 힘들여 농사 지셔서 대학 교육까지 시키는데 너희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부모님을 그리지 않으면 무얼 그릴거니?’라고 호통을 치셨어요.”
그 때 그는 자각했다. 미술이 보이는 아름다움만 담으려 해서는 안되고, 그 아름다움의 연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그에게 삶과 예술은 같은 것이 되었고, 삶을 담은 사회라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예술로 표현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민중미술 예술가들과 접하고, 그들과 함께 사회를 고민하면서 민미협과 함께하고, 회장도 역임했다.
▲ 하팅엔 구 시청사앞에서
지역 문화예술인의 대표가 되어 봉사
2011년 교하도서관 3층의 교하아트센터가 ‘경기도대표도서관’건립을 위한 사무실로 쓰인다는 명분으로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지역주민들과 전시를 준비하던 지역 화가들이 반대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주민의 의사도 묻지 않고 공공시설을 시장의 정치적 욕구에 의해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 때 주민과 예술가들이 나서서 반대하지 않았다면,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교하아트센터는 없어졌을 것이다.
그 투쟁을 계기로 ‘문화예술인협회 임진강’이 만들어지고, 김종도 화가가 사무총장으로, 후에는 대표로 조직을 이끌게 되었다. 매년 정기 전시도 하고, 작가들이 평화와 통일을 꿈꾸며 임진강 지역에서 워크샵도 했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에, 2016년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작가들이 나서서 다양한 전시와 퍼포먼스도 했다. 그의 대형 불꽃 로고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백만 촛불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2018년에는 ‘통일로 가는 평화의 소녀상’건립 파주시민추진위원회의 공동대표가 되어, 기금 마련 전시회도 가졌고, 올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일 1주년 때 소녀상 건립 기념식의 총감독이 되어 행사를 진행했다. 파주 소녀상 뱃지도 그가 디자인 한 것이다.
▲독일에서 유학중인 딸을 만나다
삶이 예술이고, 관계가 예술이도록
그는 항상 예술가들과 논다. 또 그는 항상 지역사회 현안에 함께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관계가 예술인 듯 보인다. 또 그는 강단있게 싸우기도 하지만, 덧밭 아기 고양이에게 정들까봐 뒤돌아가는 세심한 사람이기도 한다. 노오랗게 익은 참외를 들고 와서 ‘선물’이라고 내미는 얼굴은 순박하고 정겨운 그의 그림과 똑 같다.
“어느 날 문득 그림의 효용성을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림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들도 대중과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며, 텃밭 수박 한 알에 맘껏 행복해하는 소박한 이웃이다. 우리 파주에 이런 예술가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독일에서 일본군성노예 관련 작품을 전시하고 돌아온 그는 지금 분노하고 있다. 지금의 일본의 행태는 전시내용에 시비를 거는 이소 총영사를 떠올리게 한다. 삶의 희노애락이 예술이 되고, 그 예술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김종도 화가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까?
임현주 기자
▲ 째헤 쫄러른 박물관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김종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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